영화 후기

마녀 배달부 키키 후기, 이상하게 가끔 다시 보고 싶어지는 영화

키로6v6 2026. 8. 25. 20:07

마녀배달부 키키

 

 

마녀 배달부 키키는 꽤 오래된 영화인데도 지금 봐도 별로 촌스럽다는 느낌이 없다. 오히려 요즘처럼 자극적인 이야기에 익숙해졌을 때 보면 이런 잔잔한 영화가 더 반갑게 느껴진다.

사실 내용만 놓고 보면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는 영화는 아니다.

13살이 된 키키가 마녀의 전통에 따라 집을 떠나고, 새로운 도시에 정착해서 배달 일을 시작한다. 중간중간 크고 작은 일이 생기지만 누군가와 싸워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도 아니고, 엄청난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두 시간 가까이 키키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재미있다.

특히 키키가 처음 도시를 발견하는 장면을 좋아한다. 빗자루를 타고 바다 위를 지나 커다란 도시를 내려다보는데, 어릴 때 봤다면 그냥 예쁜 마을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지금 보면 저렇게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 혼자 내려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조금 막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키키도 처음에는 꽤 신나 보인다.

바다가 있는 큰 도시를 발견했고 앞으로 여기에서 멋지게 살아갈 것 같지만, 현실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당장 지낼 곳부터 구해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한다.

그러다 오소노를 만나 빵집에서 지내게 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비행을 이용해서 배달 일을 시작한다.

이 부분이 참 좋다.

마녀라고 해서 대단한 마법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 그냥 빗자루를 타고 물건을 배달한다. 심지어 배달도 매번 순조롭지 않다. 비를 맞기도 하고 물건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예상하지 못한 일이 계속 생긴다.

그래서 판타지 영화인데도 키키의 생활은 묘하게 현실적이다.

영화 중반부터는 분위기가 조금 달라진다.

처음에는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게 즐거워 보였던 키키가 점점 지쳐간다. 다른 또래 아이들을 보면서 괜히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순간도 생기고, 톰보와의 관계에서도 마음처럼 행동하지 못한다.

그러다 결국 키키가 날지 못하게 된다.

처음 봤을 때는 왜 갑자기 못 날게 된 건지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장면이다. 영화에서도 정확히 어떤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그런데 오히려 그래서 기억에 남는다.

사람도 가끔 그런 때가 있으니까. 어제까지 아무렇지 않게 하던 일이 갑자기 어렵게 느껴지고, 좋아하던 것도 귀찮아질 때가 있다. 특별히 큰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냥 마음대로 되지 않는 시기가 찾아온다.

키키에게 그게 비행이었던 것 같다.

이때 숲에서 그림을 그리며 지내는 우르슬라와 나누는 이야기도 좋았다.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을 때는 억지로 붙잡고 있지 않고 잠깐 다른 일을 한다는 이야기다.

엄청난 해결 방법은 아니다.

그냥 잘 안되면 조금 쉬어도 된다는 말이다.

오히려 이런 대사가 이 영화와 잘 어울린다. 키키가 갑자기 특별한 깨달음을 얻어서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면 지금처럼 기억에 남지는 않았을 것 같다.

지지도 빼놓을 수 없다.

영화 초반에는 키키와 지지가 거의 한 세트처럼 붙어 다닌다. 계속 투닥거리면서 대화를 나누는데, 어느 순간 키키가 지지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된다.

당연히 마지막에는 다시 들리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처음에는 조금 아쉽지만 생각해 보면 이 결말도 나쁘지 않다. 키키가 처음 도시로 왔을 때는 아는 사람이 지지밖에 없었지만 마지막에는 그렇지 않다. 오소노도 있고 톰보도 있고 이 도시에서 알게 된 사람들이 생겼다.

모든 것이 처음 모습으로 돌아와야만 좋은 결말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 영화를 이야기할 때 내용만큼 빼놓기 어려운 게 분위기다.

바다가 보이는 도시, 빨간 지붕이 늘어선 거리, 빵집에서 보내는 시간, 키키의 검은 원피스와 커다란 빨간 리본까지. 그냥 화면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장면이 많다.

특히 키키가 빵집에서 일하면서 조금씩 자기 생활을 만들어가는 부분이 좋다. 화려한 판타지 세계보다는 누군가 실제로 살아가는 동네를 구경하는 기분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마녀 배달부 키키는 줄거리를 다 알고 있어도 다시 볼 수 있는 영화다.

결말이 궁금해서 보는 영화라기보다 그 도시와 분위기를 다시 만나고 싶어서 켜게 되는 영화에 가깝다.

그리고 예전에는 별생각 없이 지나갔던 키키의 고민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조금씩 다르게 보인다.

낯선 곳에서 혼자 생활을 시작하고, 잘하는 것으로 돈을 벌기 시작하고, 그러다 갑자기 그 일이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것.

생각해 보면 꽤 현실적인 이야기다.

그래도 영화가 그 과정을 너무 무겁게 다루지는 않는다. 힘들면 잠깐 쉬기도 하고,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기도 하면서 키키는 결국 자기 방식대로 그 도시에 적응한다.

그래서 보고 나면 기분이 편안하다.

무언가 대단한 교훈을 얻었다기보다는, 일이 마음대로 안 되는 시기가 와도 그게 영원히 계속되는 건 아닐 것 같은 기분.

마녀 배달부 키키를 가끔 다시 보고 싶어지는 이유도 아마 그런 데 있는 것 같다.